미국 생활이 단조롭고 반복적인 편이라 이렇다하게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 힘들지만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아마도 미국의 플레이보이 (Playboy) 라는 잡지를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긴장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얘기 아닙니다 ^^).  토끼 심볼로 대변되는 미국을 대표하는 성인 잡지 중의 하나죠.  미국에 오기전까지 저와 플레이보이 잡지와의 인연이라면 음 하나 떠오르는게 있긴 합니다.  먼저 그 얘기 하나 하고 가겠습니다 (오늘도 얘기 길어질 것 같습니다).  ^^;;


예전에 한/글/사랑회라고 대한민국에서 HWP (아래아한글) 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HWP 를 잘 쓰는 사람들이 한글과컴퓨터사의 협찬으로 모이게 된 것인데 주로 하는 일은 서로간의 HWP 사용팁을 교환하는 것은 물론 아래아한글을 개발하는 한글과컴퓨터사의 개발자들에게 조언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고지 몇자 이내로 원고를 제출해달라는 데가 많으니 HWP 안에서 그걸 계산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개발자들에게 요구를 한다든지 아래아한글 신버젼이 나오면 베타 테스트를 한다든지 하는 일이었습니다.  

일체의 돈을 받지않는 자원봉사적인 성격이 강한 모임이었는데 (비 정기적으로 모여서 세미나도 하고 유성같은 곳에서 1박 2일로 모임을 갖기도 하고 회원님의 열의로 해남 땅끝마을에서 집담회를 갖는 등 무척 진취적인 모임이었습니다) 여기서 참 많은 HWP 고수들을 만났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HWP 만을 이용해서 코렐 드로우에서나 이용 가능한 그림을 그려내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HWP 고수들이 컴퓨터 고수는 아니었는지 태백의 한 공고에 근무하는 회원님으로부터 어느날 인터넷에 대하여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제가 받게 됩니다 (어째 말투가 김태원 같은.. ^^).  그때가 막 인터넷의 World Wide Web 개념이 정립되고 Netscape (지금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해당하는 웹 브라우져) 와 Winsock 그리고 전화선을 이용해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웹싸이트를 이용하던 때라 공고 선생님들에게 인터넷과 World Wide Web 에 대하여 짧은 강좌를 해달라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뭐 당연히 인터넷의 기원이라든지 아르파넷이라든지 밀넷이라든지 이런 이론적 얘기를 하게 되면 선생님들이 지루해할 것이 뻔한 바 제가 좀 엉뚱한 기획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 막 거의 성인 잡지 사이트로는 처음 문을 연 플레이보이사를 소개하는 걸로 강연을 이끌어 나가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태백까지 먼 길을 간 후 초청해 주신 분 댁에 여장을 풀자마자 즉시 전화선을 이용해서 플레이보이 사이트를 캐슁 (미리 담아놓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다음날 강연 현장에서 소개하기에는 너무 느릴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밤새 전화선으로 필요한 페이지들을 다운받아 놓고 넷스케이프를 미리 저장된 이미지를 가져오도록 셋팅을 한 후에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공고답게 많은 선생님들이 인터넷 강좌에 관심을 가졌고 선생님들을 앞에 놓고 강연하는 저는 참 뭐랄까 기분이 좋았었습니다 (제가 사람들 모아놓고 떠드는 것을 좋아라 합니다 ^^).  그러나 불과 20분도 안되어 꾸벅 꾸벅 졸기 시작하는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식사 직후의 강연이었고 지루한 인터넷의 역사와 원리에 대하여 얘기를 하면서 Winsock 접속법에 대하여 설명을 하니 뭐가 뭔지 몰랐던 선생님들이 슬슬 무거운 눈꺼풀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넷스케이프 웹 브라우져


자, 이제 깜짝쇼 시간입니다..  '자 그럼 실제로 월드와이드웹 써핑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가열차게 외쳐도 선생님들의 무거운 고개는 올라올 줄 몰랐습니다.  아무말도 않고 넷스케이프 웹 브라우져를 켜고 저장되었던 플레이보이 홈페이지를 불러오기 시작했습니다.  데모용 컴퓨터의 화면에 플레이보이 홈페이지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헉 소리가 시간차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헉, 헉 소리에 뭔일인지 놀란 다른 선생님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게 여러분들 혹시 아실지 모르는 플레이보이라고 하는 미국 성인 잡지의 웹싸이트입니다.  월드 와이드 웹을 이용하면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잡지도 볼 수 있고 더구나 한국에서는 나오지 않는 미국의 성인잡지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정말 국경이 없는 정보의 무차별적 교류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전날 이미 제법 건전한 (^^) 그림들만 골라 놓았었음에도 수영복을 입은 미국 처자들의 사진과 금기시되었던, 학생들에게서 찢어진 페이지로만 보았던 그 플레이보이 잡지가 모니터에 아주 선명하게 나오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선생님들의 눈빛은 모니터를 뚫을 듯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신문물에 대한 진취적인 강좌였기에 참석했던 여선생님들도 다행히 항의를 하지 않았고 그날 인터넷 강연은 아주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다만 강연이 끝나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느냐고 여쭈어 보시던 주임 선생님들의 성화가 대단하긴 했었습니다만...  ^^;;

이게 제가 플레이보이 잡지와 가진 유일한 한국에서의 추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오고나서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제가 살고 있는 도시에 있는 대학교가 바로 플레이보이의 창립자이자 회장, 플레이보이 맨션으로 유명한 휴 헤프너 (Hugh Hefner) 가 졸업한 학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시카고에서 플레이보이 사업을 시작해서 발전시켜 가다가 현재는 캘리포니아의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매주 호화로운 파티를 열고 계시죠.  

플레이보이 창립자/회장 휴 헤프너


한가지 우스운 것은 미국의 대학교에는 건물을 기증받았을 시 그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건물 이름을 짓는데 저희 학교의 심리학과 건물은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휴 헤프너라고 하지를 못했습니다.  보수적인 학교 관계자들이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휴 헤프너는 거액을 기부해서 근사한 심리학과 건물을 짓고도 끝내 이름을 부치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이 때로는 이렇게 보수적입니다). 결국 심리학과 건물은 지금도 그냥 심리학과 건물로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이 동네에 사는 분들도 대부분 이 스토리를 모릅니다 ^^).

어쩄거나 이렇게 저와는 사실 아무 관계도 없는 플레이보이 잡지였지만 갑자기 이 플레이보이 잡지 떄문에 웃기는 일이 하나 생기게 됩니다.  헉, 죄송합니다.  아직까지 서론이었네요.

미국와서 하루 하루를 정신없이 살던 어느날, 하루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데 우편함에 꽂혀있는 검은 비닐에 쌓인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집에 들어오면서 아내에게 '저 왔어요' 라고 얘기함과 동시에 검은 비닐을 북 찢자 바닥에 떨어지는 책은 바로 '허거덕!' 플레이보이 잡지였습니다.  당시 방이 2개 밖에 없는 작은 집에 살아서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가 있는 부엌옆으로 붙어있는 거실에서는 아들 녀석이 천진난만하게 돌아다닐 때였습니다.  후다다닥 잽싸게 책을 집어서 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뭐야' 

이상한 영화를 보다가 들킨 학생처럼 가슴이 조금 뛰더군요.  사실 플레이보이 잡지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주 아주 하드코어한 잡지도 아니고 사진 약간에 기사들이 대부분인 뭐랄까 소프트한 약간의 적게 입은 여성들이 나오는 잡지이긴 해도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 맞이한 성인 잡지는 참 거시기하더구만요.

참고로 아래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미국의 모든 성인잡지들은 서점에서 전시할 때도 그렇고 우편으로 배달될 때도 검은 비닐로 쌓여서 배달이 됩니다.  물론 어느 편지함에 검은 비닐로 쌓인 잡지가 박혀 있으면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만...

성인 잡지 배달 포장


책상 밑에 후다닥 던져두고 아내랑 밥을 먹고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절대 플레이보이 잡지를 한장 한장 찬찬히 들여다 본다거나 플레이보이 잡지도 새로운 쿨한 전자기기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거나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쿨럭..).  다음날 아내에게 아주 쉬크하게 '글쎄 플레이보이 잡지가 실수로 나에게 배달이 되었네? 하하하하' 하고 잡지를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나 부억 식탁 밑에서 돌아다니던 검정 포장 비닐에 제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던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했으며 아내가 다음과 같이 얘기했을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좀 덜컹하더군요..

"자기, 이거 실수가 아닌가봐, 자기 이름이 써 있는데?"

-.-;;

곰곰 생각해 보니 당시는 인터넷 쇼핑이 많이 활성화 되지 않은 때였고 여러 쇼핑 사이트에서 공짜 잡지나 이런 것들을 프로모션으로 돌릴 떄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더욱 더 쉬크한 모습으로,

 '아마도 광고용으로 돌리는 건가봐.  난 이런 것 진짜 안 좋아하는데.. 내 주소야 쇼핑 사이트에서 얻었겠지.. 허허허..' 

이렇게 웃음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달에도, 그 다음달에도 어김없이 저의 우편함에는 검은 비닐로 쌓인 잡지가 꽂혀 있었습니다.  미국의 방 두개짜리 아파트에 살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편함이 매우 좁아서 언제나 잡지는 아주 아주 티가 나게 꼽혀 있었고 제 착한 이웃들은 그걸 가져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간 저는 동료들에게 신기하다는듯이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은 성인 잡지도 프로모션으로 많이 돌리나봐요.  몇달째 플레이보이가 오던데 다들 경험 있지요?"

미국인 동료들이나 한국인 친구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습니다.

"No way, man" (절대 없었는데?)
"형, 정말예요? 저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와 땡 잡았네요."

-.-;;

저의 아내는 무척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고 저도 아내 못지않게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매달 우편함에 꽂혀 있던 플레이보이 잡지는 비닐도 뜯지 않은채 휴지통으로 직행을 하였습니다.  거룩함도 거룩함이지만 코딱지만한 집이라 어디 숨길데도 없는 집에서 아이의 눈에 성인 잡지가 눈에 띄어 아버지의 존엄함이 손상되는 불상사도 원치 않았고 아내에게 남편이 얼마나 훌륭한(^^) 남성인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던 저는 우편함에서 꺼내온 비닐도 뜯지 않은 플레이보이 잡지를 아내 눈앞에서 휴지통에 퐁당 빠뜨리는 퍼포먼스를 매달 한번씩 해야만 했습니다.

"이번달에도 왔네?" (퐁당) "참 얘네들 꾸준해" (퐁당)

누구는 샘물이 퍼져서 건너편에 있는 누나의 손길까지 닿으라고 돌을 퐁당거리는데 저는 굴지의 성인잡지를 매달 목적도 없이 퐁당 퐁당거려야 했습니다.

플레이보이 회사에 한번 연락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무려 일년이 넘게 무료로 배달이 된 후였습니다.  3개월이면 대충 중단될줄 알았던 잡지가 (미국에서 무료 프로모션은 대개 3개월입니다. 미국에서 맥을 구입하면 맥월드가 3달간 무료로 옵니다) 일년이 넘고 나자 (유료 정기구독은 일년 단위로 진행됩니다) 뭔가 착오가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물론 그동안에 무료로 플레이보이 잡지를 받는다는게 제 주변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우리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은 괜히 실없이 집안을 뚤레 뚤레 살펴댔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아파트 건물 앞의 대형 쓰레기통(dumpster)에 고개까지 집어 넣어 한번씩 살펴보고 가곤 했었습니다.  노골적으로 잡지를 원하는 친구들에게는 '줄서, 줄서, 니가 대기자 번호 148번째야' 라는 실없는 이야기를 건네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당시 금요일 저녁이면 청년들에게 '거룩하게 살자' 라고 얘기했던 제가 도색잡지를 나누어 준다더라 하는 소문을 들어서는 안되었기에 공짜로 받는 잡지지만 절대로 누구에게 선물로 줄 수는 없었습니다.  거룩한 사람 이미지는 이렇게 저를 사정없이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ㅠ.ㅠ

일년이 지나고 나서야 플레이보이사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메일 주소 찾기도 쉽지 않더군요.  아마도 그들이 별로 받아 본적이 없었을 "제발 나에게 무료로 잡지를 보내는 것을 중단해 달라" 라는 내용의 아주 간곡한 이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매달 저의 우편함에는 잡지가 보란듯이 꽂혀 있었고 앞집 사는 사람좋고 덩치 좋은 흑인 친구 제이슨은 "왓쓰 업 브로~~" 하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잡지를 보내지 말라고 하는 일도 귀찮은 일이어서 플레이보이사에 이제는 전화를 걸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2년이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어렵게 그들의 소비자 지원센터 전화번호를 찾아 상담원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 지금 2년 넘게 플레이보이지가 무료로 오는데 제발 좀 그만 보내라"

상담원은 제 주소도 체크하고 어쩌고 성의를 보이는 듯 하더니 알았다고 처리하겠다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정말 눈물어린 호소를 했습니다.  아내가 옆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당시 살던 아파트에는 결국 물난리가 나고 정화조가 넘쳐서 집안이 그야말로 X물로 뒤덮여서 할 수 없이 이사를 할때까지 근 5년동안 매달 꼬박 꼬박 단 한달도 거르지 않고 플레이보이 잡지가 배달이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떠나간 후 그 집에는 계속 그 잡지가 배달이 되었을테고 그 집에 살게된 사람은 그걸 어떻게 처리해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잡지는 일급 우편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사를 가도 자동으로 새로 이사된 주소로 배달이 되지 않습니다).  보통 한국사람이 살던 아파트에는 다음 입주자도 한국 사람으로 배정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누군가는 제 이름을 감사하게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를 하고난 후 저는 더 이상 매달 우편함에 꽂혀 있는 검정 비닐에 쌓인 잡지를 아내 앞에서 쉬크하게 휴지통에 집어 넣는 퐁당 퍼포먼스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것도 5년 넘게 하던 일이라 가끔씩은 허전하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왜 플레이보이사에서 저에게 그토록 오랜 기간동안 잡지를 무료로 보냈는지는 알길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토록 오랫동안 잡지를 공짜로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잡지들은 일년마다 돈 내라고 청구서가 날아오는데 5년 동안 청구서 한장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 독특했던 경험이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경험인지라 한번 나누어 보고 싶었습니다.  너무 내용이 없는 에피소드라 짧을까봐 한국에서 있었던 일까지 얘기하였었는데 이렇게 길어졌네요.  ^^;;

그냥 외국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는 것.
오늘 얘기 끝!!

P.S. : 저는 과연 그 5년동안 첫번째 배달되어서 모르고 뜯은 것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검정 비닐을 뜯지 않았을까요?  이 기회를 빌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딱 두번 뜯어 보았었습니다.  한번은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성 100인의 누드 특집이었을 때 한번 (1등이 마릴린 먼로더군요 ^^), 또 한번은 제가 정말 좋아하던 피겨 스케이터인 카타리나 비트의 누드가 실렸을 때 한번 이렇게였습니다.  5년 넘게 배달되는 동안 두번이라는 횟수는 수학으로 얘기하자면 0 에 수렴하는 횟수이니 저는 거의 한번도 안 뜯어보았다고 해도 되는 거죠?  ^^;;  그 내용이 실린 것은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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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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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빨간내복 2010/02/12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일본유학시절 (총각때...) 한국으로 치면 주간한국 같은 일본의 시사잡지를 우연히 하나 구입하여 읽었는데, 국제정세라거나 일본의 경제 등등에 관한 심도 있는 기사거리가 좋더군요. 그런데, 세상에 중간에 올누드사진이 떡하니......

    그래서 정기구독하였습니다. ㅎㅎㅎ 총각때 말입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2/13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일본의 잡지들은 '헉!' 할 때가 많죠. Friday 나 Focus 같은 잡지들도 중간 중간에 정말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뭐 시사잡지야 유부남이 되셔서 구독해도 되지 않습니까? 하하하..

  2. 2010/02/12 2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2/13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국에서 이런 저런 잡지를 싸게 혹은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참 좋습니다. 저도 현재 Entertainment Weekly 를 무료로 구독하고 있는데 코카콜라 병뚜껑에 있는 코드를 모아서 받은 거랍니다. 직장에서도 제가 이걸 모으는 걸 아니까 사람들이 콜라는 먹고나면 병뚜껑을 저에게 준답니다. ^^;;

  3. BlogIcon Happyrea 2010/02/19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병뚜껑...제 친구가 새로집을 사서 이집으로 왔을때,
    선물로 그걸 이용해서 잡지를 2권 구독해 줬는데...

    근데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청구서도 안오고...^^

    • BlogIcon 샴페인 2010/02/22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오래동안 청구서가 안 온 것은 저도 미스테리입니다. 주변에서도 그런 일을 본 적이 없대요.

  4. BlogIcon 아고라 2010/03/09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그렇게 오랫동안 공짜잡지가 날아오다니..저역시 의심의 눈길을 보내지않을 수 없군요. ^^ 게다가샴페인님께서 미리 질문을 안받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만서도 딱 두번 오픈하셨다는 잡지의 내용을 어떻게 아셨는가 하는 의문이 샴페인님의 오픈 자술서!를 읽는 순간 제 머릿속을 휘리릭 지나쳤답니다. 비록 샴페인님께서 바로 뒤에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미리 입막음하셨슴에도 불구하고 여쭤보고 싶습니다. ㅎ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3/12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순결/순수/순도 100% 인 사람인지라 (그런 잡지가 배달이 오는게) 무척 당황을 했었습니다만.. 흠흠.. ^^;; 내용을 알게 되는 방법은.. 음.. 나중에 아고라님의 블로그에 직접 남겨드리겠습니다. 별 것 없습니다. ^^

  5. FOOOL 2010/03/23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잡지를 보지 않는다고 더 순결한 사람이되거나 본다고 더러운 사람이 되는건 아닌듯 싶습니다. 이렇게 보지않았다는걸 BRAGGING 하는것이 더 이상한듯 합니다. 플레이보이라는 잡지는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듯 싶습니다. 글을 읽는동안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글쓴이의 일관되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내용물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이미 성립되있던 자신의 편견에 빠져 밖에서는 이런 '쿨'한 잡지가 나에게 무료로 배송되지만 나는 절대 보지 않는다 라는걸 떠벌리고 다녔다는게 참 불편하네요.


이번 포스트 역시 지나간 기억 더듬기의 하나입니다.  저에게는 잊을 수 없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 돌이켜 보니 이런 저런 재밌는 일들이 많았네요.

저는 인구가 작은 대학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어바나라고 하는 도시와 샴페인이라고 하는 도시가 나란히 붙어 있는 쌍동이 도시에 삽니다.  도시 인구가 10만인데 대학 재학생이 5만에 달하다 보니 도시 인구 거의 전체가 대학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구가 작다 보니 아무래도 쉽게 노출이 되는 사회라 본의 아니게 사람 눈에 띄는 기회가 한국보다 훨씬 많습니다.  저는 한국 영화를 매우 사랑하는 일반 팬입니다.  미국에 와 있어 보니 한국 영화가 더 그립고 사실 애초에도 한국 영화를 참 좋아라 했었습니다.  물론 영화와 관련된 어떤 전문적인 일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만 한국에 있었을 때는 우연찮게도 영화와 연관되어 흥미로운 일에 연루된 적이 있긴 합니다.  당시 씨네 21의 커버 스토리가 되기도 한 이야기중의 하나도 연관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털어 놓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게 주제가 아니므로 패쓰. ^^;;

하여튼 이곳에서 살면서 영화 좋아하는게 티가 났는지, 아니면 제가 오지랍을 떠는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한국 영화와 관련된 일에 종종 저에게 연락이 옵니다. 그로 인해 몇가지 에피소드가 또 있는데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느날 저에게 이메일로 아는 분께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미국인인데 저를 소개해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뭐든지 한국에 관한 거라면 오지랍을 떠는 제 성격 탓에 쾌히 그러마 저도 만나보고 싶다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캠퍼스 내에서 그 미국인이라는 분을 만나뵈었는데 이곳 대학교 도서관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히 강사로써 한국 영화 및 아시아 영화에 관한 수업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일단 미국인이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에서 호감이 있었던 저는 만나자마자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듯 죽이 많아 한국 영화를 주제로 엄청난 수다를 떨었습니다.  나중에는 한국 식당까지 옮겨가서 한국 음식을 함께 먹으며 그야말로 수다의 향연을 펼쳤습니다.  이 친구는 일반적인 미국인이 좋아하는 편안한 한국음식이 아닌 다소 강력한 비빔냉면이나 오징어 볶음등도 먹을 줄 아는 제대로 한국 음식 애호가였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제가 만나본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모두 (정말 모두)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의 힘이란 이런건가 봅니다.

그는 그동안 한국영화에 관한 나름대로의 소소한 궁금한 점에 관해 많은 질문을 해댔고 평소 한국의 연예 가쉽과 DP 에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저는 수많은 대답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제대로 답변을 들어서 좋았는지 정말 신나게 물어보았고 저도 정말 우쭐해서 무수한 대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서 토론다운 토론을 할 수 있었고 한국영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에도 몇차례 개인적인 만남이 있었고 그의 집에 가보기도 했으며 때로는 그의 탁월한 식견에 감탄을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그가 영화배우 김윤석이 나중에 크게 뜰 거라는 예언을 했고 (그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배우였으며 그때 당시 김윤석은 조연 급으로 이름을 알려가는, 그야말로 일반 대중은 거의 모르던 그런 배우였습니다.  아마 엄태웅이랑 나왔던 드라마 부활 (알려주신 분 감사 ^^) 에서 강냉이를 먹는 반장으로 나올 때인 걸로 기억합니다.  그는 한국 드라마까지 섭렵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의 예언대로 김윤석은 지금은 뭐 확고부동한 위치를 갖춘 배우가 되었지요.  그야말로 인지도가 없던 시절의 김윤석씨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본 것이지요.

웹포토: 영화배우 김윤석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는 저에게 몇가지 개인적인 부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초기의 한국 영화를 구해달라는 부탁이 그거였었습니다.  하녀를 비롯한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물론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대라든지 신상옥, 유현목 감독등의 초기 한국 영화 자료들을 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이곳 미국에서요.  아시다시피 지금은 이런 영화들이 정식으로 그래도 DVD 로 출간되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불법 다운로드를 제외하고는 구할 길이 도저히 없더군요.   별수없이 암흑의 세계를 검색해야 했고 몇개는 구해서 그에게 건네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영어 자막이 구해지지가 않더군요.  그는 괜찮다라고 하면서 그것도 소중히 생각을 했었습니다 (자막 없이도 한국 영화를 보겠다는 그의 열정이 감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관계를 맺은지 한참이 지나 그에게 기쁨에 가득 차 있는 이메일을 한통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부산 국제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와우..  미국의 소도시에 있는 주립대학교의 미국인 교수 (당시 그는 영화에 관한 강의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조교수라는 직함도 받게 되었습니다) 가 한국을 대표할만한 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뭐 제일처럼 기뻤었고 그에게 농으로 이제 너는 장동건도 실물도 볼 수 있고 전도연도 김혜수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너무 부럽다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김윤석을 실제로 만나볼 수 있었는지는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못 물어보았군요.

그렇게 저의 친구는 부산 영화제에 다녀왔고 서로가 바빠서 그 후 이메일 교환도 못하고 연락도 못하고 지내다가 우연히 그의 모습이 담긴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 저는 아주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의 기사입니다.  기사 캡춰화면이며 원문 링크는 여기입니다.

노컷뉴스 캡춰 화면이며 저작권은 노컷뉴스에 있습니다.


위의 기사에서 보시다시피 그는 한국에 가서 애초의 목적인 영화제 참관 및 강연은 물론 한국을 위해 스크린 쿼터 사수 1인 시위를 하고 온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스크린 쿼터라는게 할리웃의 자본력에 대하여 한국 영화 시장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구책인만큼 대상국가인 미국의 그것도 미국인 영화 교수가 일인 시위를 했다는 것은 정말로 그때 화제가 되기 충분했었습니다.  영화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 중에는 혹시 이 분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은 저의 자랑스러운 친구 Robert Cagle 교수를 여러분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 산다는 것은 이렇게 가끔 놀라움을 던져주어 지루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P.S. : 위의 기사중의 사진과 캡션을 보시면 미국 어바나 샴페인대 영화학과 교수라고 되어 있는데 그런 학교는 이곳에 없습니다. ㅎㅎㅎ  일리노이 대학 어바나-샴페인이어야 맞지요. 

웹포토 출처: 
http://extmovie.com/zbxe/movietalk/78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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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빨간내복 2010/02/03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대단한 한국영화 사랑이시네요. 정말 신선한 충격인데요. 거기다 김윤석씨가 뜰거라는 예언까지..... 저도 마왕에서 팝콘먹는 흥신소직원으로 첨봤었는데....

    그러고보니 샴페인님 영화 광이셨죠. HT로 처음알게되지 않았나요? 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2/03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제가 빨간내복님을 처음 알게된 계기가 홈 씨어터 DIY 프로젝트때문이었지요. 영화가 저랑 빨간내복님을 이어줬지요. ^^;;

  2. tyty 2010/02/03 0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왕이 아니라 부활입니다. 그리고 팝콘이 아니라 강냉이고요. 마왕에 출연하려고 했으나, 그당시 영화 스케줄때문에 출연 못했죠.

    • BlogIcon 샴페인 2010/02/03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문중에 추가했습니다. 강냉이로 고쳤습니다. 저에게는 왜 팝콘으로 보였었는지.. ㅋㅋㅋ

  3. BlogIcon 칼촌댁 2010/02/05 1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하신 분이세요. 정말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네요.
    미국에 와서 저는 저 교수님과 같이 한국문화나 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적 마인드 가지신 분을 만나기가 참 힘드네요.
    부산국제영화제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네요.
    제가 바로 부산출신이라...ㅎㅎ
    대학다닐때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열렸더랬습니다.
    몇년간 열정을 가지고 수업도 빠져가며 영화보러가곤 했는데,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이건 또 다른 얘긴데, 어바나-샴페인이랑 지금 제가 사는 곳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대학타운이고 나름 이곳도 twin city거든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고 싶어요.

    • BlogIcon 샴페인 2010/02/09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국의 대학도시들은 정말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곳도 트윈시티인 것은 몰랐습니다.

      저는 부산 국제 영화제를 한번도 못 가봤답니다. 언젠가는 그곳에 한번 가볼 기회가 있기를 꿈꾸면서 살고 있습니다. ^^

  4. 미야 2010/02/13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저는 샌루이스있어요. 그런 교수님이 있다는거 참... 열심히 화이팅~ 뭘 화이팅인지는 모르겠지만서도..ㅎ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2/16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세인트 루이스라면 여기서 멀지 않네요. 정말 고마운 교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 BlogIcon Happyrea 2010/02/19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김윤석 배우 인상깊었어요.
    제가 사실은....엄태웅 팬이거든요. ㅋㅋㅋ
    부활 드라마를 너무너무너무 좋아해서 10번은 본거 같아요.
    좀 심했나요? 암튼...그래서 김윤석도 좋아하죠.
    추격자에서도 인상깊은 연기를 했었죠.

    저 교수님의 1인시위..그것 또한 인상적이네요.

    • BlogIcon 샴페인 2010/02/22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엄태웅 정말 좋은 배우죠. 저는 '가족의 탄생' 에서 정말 좋게 보았습니다. 김윤석씨야 정말 더할 나위 없는 배우죠. 처음으로 눈에 띄었던게 천하장사 마돈나였던가요? 거기서 처음 주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 분의 1인 시위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혹시 제가 지난번에 쓴 미국 초등학교에서 행한 한국에 관한 특강 글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못 읽으신 분을 위해 간단히 첨언하자면 미국 3학년 교실에 가서 한국에 관한 특강을 했었습니다).  말씀 드렸던 것처럼 미국 학생들의 반응도 너무 좋았고 미국 초등학생들에게 적은 수나마 한국을 알렸던게 정말 가슴 뿌듯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2탄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물론 한참전 이야기입니다.


한국 특강 행사의 열렬한 반응에 탄력을 받은 저의 아내가 자발적으로 한가지 일을 더 기획을 했습니다.  한국 특강 행사에서 아내도 한복을 차려 입고 아이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함께 지켜보았었거든요.  바로 3학년 학생 전체에게 점심으로 한국 음식을 해 주는게 어떻느냐는 의견이었습니다.  제가 행한 강연 후에 한국에서 온 과자(쵸쿄파이)랑 전통 유과를 맛있게 먹던 그들이 떠올라서였습니다.  3학년 다른 한국 학부형님들과 상의가 진행이 되었지만 혹시라도 한국 음식을 잘 못먹고 탈이라도 나면 소송감이라는 우려를 제시해준 분이 계셔서 조금 망설여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곳에서는 음식에 알러지가 있는 친구들도 있고 까다롭게 음식을 먹이는 사람들이 많아 잘못하면 법정소송까지 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들 녀석의 담임 선생님인 Mrs. Frost 와 상의했더니 의외로 대단히 반색을 하셔서 결국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상도 아들 반뿐만 아니라 옆 반인 Mrs. Unzicker 의 반까지 포함을 하는,3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 음신 잔치로 발전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사립학교에 다녔었는데 한 학년에 반이 두개가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가정 통신문을 통하여 Korean Food Lunch 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3학년 모든 학생들의 학부형들에게 통보를 하였고 혹시라도 꺼리는 부모가 있으면 선생님께 알리고 그 날은 도시락을 따로 싸올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평상시에는 학생들이 지하에 있는 큰 식당에 내려가 싸온 도시락을 먹거나 미리 돈을 납부한 학교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습니다 (미리 한학기치 식단이 나와서 아이들이 안 좋아하는 메뉴일 때는 도시락을 싸가고 미리 신청한 점심에 한해서만 돈을 지불합니다).

 

결국 그 한국 음식 잔치가 아들 녀석의 교실에서 성대하게 거행이 되었습니다.  같은 학년인 한국아이 4명의 어머니들 혹은 이모 되시는 분 (어머니가 한국에 계신 경우) 김밥, 불고기, 잡채, 하얀 쌀밥, 만두를 두 학급 분을 함께 준비하여 써빙을 하였습니다.  하얀 쌀밥의 경우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아내가 과거에 경험한 바로는 아이들이 맨 하얀 쌀밥을 무척 잘 먹었기 때문에 메뉴에 집어 넣기로 하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쌀밥 먹는 방법은 매우 독특합니다.  쌀밥에 그냥 그 위에 간장을 뿌려서 먹습니다 ^^).


혹시라도 아이들이 한국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까봐 김치를 비롯한 매운 음식은 일체 넣지를 않았습니다.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매운 음식을 더 잘 못먹거든요.

 

가장 인기를 끈 품목은 의외로 하얀 쌀밥과 만두였습니다.  하얀 쌀밥은 가져간 양이 일찍 동나버려 아쉽게도 조금 모자라게 되었고 냉동 만두를 튀겨간 만두의 경우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불고기와 잡채도 인기가 있었고 김 때문인지 김밥이 다소 인기가 적었습니다 (사실 미국의 아이들은 김의 입안에 들어가서 끈적하게 되는 느낌을 참 싫어한 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은 좀 다릅니다).  이날 두반의 담임 선생님도 함께 식사를 하였고 마침 교실을 지나가시는 교무실 직원분들도 함께 맛을 보는 기회가 제공되었습니다.  반응은 정말이지 너무나 뜨거웠었습니다.  하얀 쌀밥을 반찬도 없이 그 자체로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면 이색적이기도 하지만 음 역시 한국식 식사가 제일인지 너희들도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났었답니다.^^

 

한가지 너무나 감동스러운 일은 미국 아이들이 서투른 한국말이지만 한국말을 미리 한국학생에게 배워서 "고맙습니다"  혹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하얀 종이에 적어서 영어로 감사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날 써빙을 하신 4명의 한국 어머니 혹은 이모님에게 전달을 한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이름도 한글로 배워서 적어낸 학생도 있었습니다. "데니얼" 이런 식으로 한글로 써서 말입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받았다고 집에 카드를 여러장 (4분의 어머니들께 골고루 아이들이 드렸다고) 들고 왔는데 카드에 써있는 미국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쓴 한글 메시지를 보니 가슴이 뜨거워지더군요.  대단한 정성을 들였는지 제법 알아볼 수 있게 잘 썼더군요.  그야말로 한글을 한자 한자 정성들여 그렸더군요.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블로깅을 열심히 하는 시대였다면 이 카드들도 스캔해서 보관해 놓았을텐데 지금은 아쉽게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네요. ^^;;

 

잠깐의 아이디어로 행한 즉홍적인 행사였지만 이 또한 한국을 알리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반 담임 선생님께서도 너무나 맛있게 한국음식을 드셨고 자칭 중국 음식 팬이라는 아들의 담임인 Mrs. Frost 의 경우는 김밥이랑 불고기 레서피를 달라고 아내에게 하도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아내가 시립도서관에 가서 영어로 된 한국음식 요리책을 빌려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요리책안의 내용들이 너무 복잡하게 쓰여 있어 결국 아내가 본인의 레서피를 영어로 적어 주게 되었습니다).

 

여러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아무 거부감 없이 진솔하게 받아들이려는 미국 초등학생들의 열린 자세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강연이나 한국 음식 잔치 모두 참여하였고 참여한 저나 아내를 너무 행복하게 해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받은 학교 선생님으로부터의 가정 통신문에는 한국 음식 잔치를 대성황리에 마쳤고 무척 맛있었으며 여러분 자녀에게 어땠었는지 물어보라는 세심한 배려가 담긴 선생님이 쓰신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학부형들에게 행사 보고를 한 것이고 학부형들의 평을 여쭌 것이지요.  불과 총인원 45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대접한 한국 음식이지만 이 45명에게 끼친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이 다른 미국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퍼져나가게 되기를 참 바랬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 한국 음식 행사에 바쁜데도 불구하고 성심성의껏 정성을 다해 같이 한국 음식을 준비해주신 3분의 어머니와 한분의 이모님께도 참 감사했었습니다.  사실 만약 미국 학부형들하고 함께 였다면 각자의 스케쥴 맞추느라 이런 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음식 행사가 결정되자마자 한국 분들은 그야말로 다른 모든 일을 취소하고 이 일을 함께 해주셨었습니다.  잘 뭉치고 희생하는 그야말로 한국인 정신을 발휘했었지요.  그날만큼은 정말 문자 그대로 다들 민간 외교관이셨으니까요.


이제는 그 때 한국 음식을 맛본 아이들이 다 커서 어쩌면 기억도 안나는 이벤트일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그들이 한국과 관련된 일을 접했을 때 조금이라도 기억을 떠올리는 그런 행사였기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 기회를 빌어 한번 바래 봅니다.

P.S. : 이 날 행사로 아내는 아이들이 하얀 쌀밥을 좋아하는 걸 알게 되었고 앙콜 겸 3탄의 행사로 도시락처럼 귀여운 토끼 주먹밥을 만들어서 학교로 보내서 아이들이 나누어 먹게 했답니다. 물론 아이들은 맛도 있고 모양도 독특한 음식을 참 좋아했지요.  미국은 이런 귀여운 음식이 없답니다. ^^  위의 행사에 사진이 전혀 없어서 3탄의 음식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아래 주먹밥의 귀는 당근으로 눈은 흑깨로 만든 거랍니다.  가끔 삐뚤거리는 눈과 귀가 있는데 이는 저희 아이들이 참여해서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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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빨간내복 2010/02/01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주먹밥 넘 예뻐요. ㅎㅎ

  2. BlogIcon Happyrea 2010/02/02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진정 한국을 알리는 좋은 날이 되었겠네요.
    음식을 통한 교류가 의뢰로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더라구요. 대화도 손쉽고요...함께 힘들여 음식 준비하신 분들에게도 굉장히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이 되요. 제가다 감사하네요..ㅎ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2/02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내의 신조가 밥 끝에 정 붙는다입니다. 역시 함께 먹는 것만큼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이 없을테고 그 나라의 음식을 먹는 것만큼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음식 준비해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하죠.